편집국 편집장 [CEOin PREMIUM=편집국 편집장]
고교생 시인의 탄생…
“문학이라는 두 글자 앞에 조심스러운 떨림이 있었다”
인천 송도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산 군이 월간 『한비문학』 제175호(2025년 5월호) 시 부문 공모에 당선되며 정식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한비문학』은 20년 넘게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로, 전통성과 문학적 권위를 갖춘 간행물이다.
한산 군은 이번 공모에서 ‘비애’, ‘꽃샘추위’, ‘시험’, ‘청춘’, ‘바다’ 등 총 5편의 시를 출품해 전부 당선되는 성과를 거뒀으며, 오는 6월 30일 등단 인정서와 등단 패를 수여받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고등학생의 작품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 문학적 완성도와 주제의식 면에서 성숙한 시선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심사를 맡은 김원중, 김송배, 김영태, 신광철 시인은 공동 심사평을 통해 “한산 군의 시는 솔직한 감성과 현실적 고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섬세하게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단은 특히 “각 시의 도입부는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시 전체의 정서를 유기적으로 이끌어가는 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며 “표현 감각과 시적 구성력이 탁월하며, 향후 성장 가능성 면에서도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등단 소감을 밝히는 한산 군의 목소리에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라는 세계에 대한 진중한 태도와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의 나라를 펼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집필한 글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렇게 작은 소망을 품고 지내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등단 소식이었다.”
그는 이어,“문학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떨림이 함께한다. 낯선 세계의 문을 두드릴 때도,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은 문장의 끝을 꿰맬 때도, 이 길을 걸어도 괜찮을지 스스로 묻고 되묻던 날들에도 그랬다. 등단이라는 두 글자를 마주했을 때, 기쁨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조심스러움이었다. 감히 창간 21주년을 향하는 ‘한비문학’이라는 이름 앞에 서툰 문장을 내놓아도 되는 것일까, 오랜 물음이 다시 찾아왔다”고 밝혔다.
이미 소설 3편을 탈고한 상태라는 그는, 문학이라는 창작의 길을 “외롭고 느린 길”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설 3편까지 탈고한 상태에서 새로운 시작점에 서게 되었다는 것은 제게 무엇보다 큰 영광입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불쑥 솟아오르던 상상들, 말로 다 하지 못했던 창의를 모아 한 편의 이야기로 엮는 과정은 늘 외롭고 느린 길이었다.”
끝으로 그는 이번 기회를 가능케 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심사를 맡아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백산(栢山) 정종암’ 박사님의 시선과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스스로의 문장을 의심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산 군의 등단은 단순한 고등학생의 문학 수상이 아닌, 시라는 장르 안에서 또렷한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신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한비문학』 제175호에 전문 게재된 그의 시들은, 현실과 감성을 오가는 섬세한 언어, 구조의 치밀함, 상징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향후 시단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는 등단한 한산 군의 시 ‘비애’, ‘꽃샘추위’, ‘시험’, ‘청춘’, ‘바다’ 이다.
(비애)
안개 낀
새벽이슬 파헤치며
무거운 배낭을 메고
덜 깬 잠에
터벅터벅 걷는다
전쟁이다. 전쟁
이 전장터에서,
맹렬하게 싸우며 이겨내고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그날을 기대하면서도
싱그러워야 할 내 청춘이
녹록지 않으니
허망한 꿈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전쟁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비애가 똬리를 튼다.
이 지루한 전쟁이 끝나는 날,
한 줄기 빛이 되어
내 인생의 봄은 오리다
(꽃샘추위)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가
창밖을 수놓는다
꽃샘추위를 이기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나보다
침대 위,
꽃샘추위를 이기지 못해
누워버린 채
아름다움을 발하는
꽃만 시기하며 눈을 감아버리는
나약함이 엄습한다
그래도 나, 항해자
다시 펜 하나 쥐고 바다를,
험난한 인생을 항해한다
앞날의 기대감에
뜀박질하며 달린다
눈앞의 연무가 시야를 가릴지라도
길이 있다는 확신이 선다
뜀박질을 멈추지 않고
달려간 그곳에는
무한한 유동의 끝에는
유일무이한 보물이 존재하지 않을까.
(시험)
지금,
이 순간이
후루룩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지옥이다. 지옥.
공부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나!
대학생인 누나는
비웃고 또 비웃는다
우군인 엄마까지.
올해가 지나면,
나도 대학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오르지 않는 성적에,
불안하고 초조하다
지긋지긋한 시험이 끝나는
12월이 오면
이 마음, 없어질 수 있을까
나는,
갈망한다. 영광스런 내년의 봄을!
(청춘)
내 다리는,
십이만 사천사십 시간을 걸어 왔으니
앞으로의 14년을 뛰어갈 수 있고
상처에서 피어나는
독특한 혈의 향은
끝까지 참고 견뎌내며,
뜀박질에 진득한 습기가
턱 밑까지 차오를 때
쓰러지지 않으리라
나아가야 하는 이는
앞으로 나아가고
뒤를 되돌아보는 이는
멈춰 섰을 때,
나 또한 엉망인 모습으로
산발처럼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굳은살 박힌 손바닥으로
쓸어 넘기리라!
(바다)
아. 청량하게 굽이치는
파도가
머리를 하얗게 물들어
지난 과거를 쓸어버린다.
상쾌한 바닷가의 한풍
그 순간의 추억이
너와 나의 기억에 남아 있을까.
수없이 발길에 치이고 치이는
모래사장의 은빛 유리구슬처럼
가로등 아래
부둣가 바닥에 깔린 콘크리트처럼
새벽녘에 걸으며 본,
불그스름한 태양이 바다로 떨어지듯
함께한 기억이 점차 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