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편집장 “이제 무대는 바뀐다”…
여행 자유화 이후 태어난 세대가 ‘조용히’ 한국 사회를
바꾸고 있다
“어느 날, 우리 회사는 회의실에서 한 명의 이사보다 3명의 인턴을 더 경청하기 시작했다.”한 스타트업 대표는 최근 조직문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사님은 예전에 잘했고, 인턴은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요.”이 짧은 대화는 지금 한국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 전환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지금 이 순간, 기득권 세대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영향력을 가진 세대는 이미 바뀌고 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를 전후로 탄생한 세대들이 조용하지만 결정적으로 사회 전반에 균열을 내고 있으며,정치·경제·사회·문화의 구석구석에서 ‘세대 교체’의 징후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흐름의 초입에 서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를 경계로 나뉜 두 세대
1989년 1월 1일, 정부는 해외여행 자유화를 전격 시행했다. 그전까지 해외여행은 ‘허가제’였다. 개인이 외화를 쓰는 것 자체가 통제의 대상이던 시절. 이 제도의 변화는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니었다. 세대의 삶과 인식에 본질적인 전환점을 찍었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세대, 곧 586세대는 ‘국가’와 ‘집단’, ‘희생’이라는 키워드 아래 살아왔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고, IMF 구제금융 시기엔 희생이 키워드였으며, 빠른 산업화를 이끈 주체였다. 이들은 “우리가 한국을 바꿨다”는 자부심과 함께 사회 시스템의 중심에 진입했다.
반면, 이후 세대는 전혀 다른 언어로 세계를 이해한다. 이들은 세계를 ‘여행’으로 만났고, 경쟁이 아닌 ‘연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희생’보다는 ‘균형’을, ‘집단’보다는 ‘개인’을, ‘충성’보다는 ‘실력’을 중시한다. 이질적 가치관은 충돌을 야기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기득권의 언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조용한 세대 교체가 시작됐다”…
‘586’의 마지막 무대와 ‘포스트 586’의 부상
“땅따먹기는 끝났다. 이제는 무대를 바꿔야 할 시간이다.”
한국 사회를 30년 넘게 움직여온 586세대가 역사적 퇴장을 준비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대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각 영역에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경험을 장착한 ‘포스트 586’ 세대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세대 교체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는 단순한 규제 철폐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인식적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점이었다. 이후 태어난 세대, 혹은 이 시기를 거치며 성장한 세대는 더 이상 ‘국가주의’나 ‘운동권 서사’에 기대지 않는다. 그들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사고를 갖췄으며, 로컬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삼는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조용하지만 실질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다.
1989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날은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시점이다. 이전까지 해외여행은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던 '특권'이었다. 자유화 이전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는 국가 중심의 제도와 집단 의식 속에서 성장했다. 반면, 이후 세대는 해외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직관하고, 개인 중심의 서사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키웠다. 이 시점을 경계로 한국 사회의 세대 구도는 완전히 달라졌다.이 흐름을 이해하려면, 먼저 1989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 날은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시점이다. 이전까지 해외여행은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던 '특권'이었다. 자유화 이전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는 국가 중심의 제도와 집단 의식 속에서 성장했다. 반면, 이후 세대는 해외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직관하고, 개인 중심의 서사 속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키웠다. 이 시점을 경계로 한국 사회의 세대 구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반면,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586세대는 지금 이 순간 마지막 무대를 걷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경험하며 한국 현대사의 두 축을 이뤘지만, 최근 들어 그 영향력은 급격히 약해지고 있다. 이들이 주도한 ‘기득권 시스템’은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과 경제권에서 586 세대는 여전히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민심의 무게중심은 이미 옮겨가고 있다.
기득권 구조의 핵심은 ‘닫힌 시스템’이다. 고시 출신 인맥, 학연·지연 중심 인사, 대기업 중심 공급망, 정당의 공천 구조 등은 소수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폐쇄적 질서를 강화했다. “땅 따먹기 식의 경제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진입장벽을 치고 규제와 연줄로 버티는 시대는 끝났다. 자본은 유연함과 창의력을 좇는다.” 이 말은 최근 모 금융지주 회장이 비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이다. 전통적인 재계 구도에 회의감을 드러내는 이 발언은, 기성세대가 감지하는 위기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기득권 시스템, 이제는 피로하다”… 폐해는 어디에 있었나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세대, 곧 이른바 '586세대'는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자, 산업화와 정보화를 동시에 견뎌낸 주체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중추로 성장해 정치, 행정, 언론, 학계,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해왔다. 그 공로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은 점차 ‘기득권 구조’로 고착되었고,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들도 누적되기 시작했다.
기득권 구조의 핵심은 ‘닫힌 시스템’이다. 고시 출신 인맥, 학연·지연 중심 인사, 대기업 중심 공급망, 정당의 공천 구조 등은 소수에게만 유리하게 작동하는 폐쇄적 질서를 강화했다. 2024년 기준, 공공기관 상위직의 평균 연령은 57세, 대기업 이사회 평균 연령은 59세를 넘긴다. 반면, 2030세대가 진입 가능한 구조적 사다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성실히 노력해도 기회는 없다"는 인식은 수치와 데이터로 확인된다. 한국청년정책연구원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2030세대의 ‘한국 사회의 공정성’ 체감 점수는 100점 만점에 48점에 불과했다.
2023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임원 중 40대 이하의 비율은 11.8%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27.3%), 미국(34.5%)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기업 구조는 신진 인재의 유입을 막는 ‘연령 장벽’에 갇혀 있다.
기성세대가 구축한 기득권 시스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를 단단히 지탱해왔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구조화된
폐쇄성, 세대 간 단절, 불평등의 재생산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낙하산 인사’, ‘고시 출신 권력 집중’, ‘정경유착’, ‘혈연·학연·지연 중심의 네트워크’는 과거엔 필수 전략이었지만 지금은 치명적 리스크다. 공공기관의 60% 이상이 여전히 50대 이상으로 채워져 있고, 국내 주요 상장기업의 이사회 평균 연령은 2024년 기준 59.2세다(한국기업지배구조원 통계).
조용히 등장한 새로운 세대들…
시스템이 아닌 ‘감각’으로 세상을 바꾼다
기존 질서를 통째로 뒤집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틀을 조용히 설계하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대표적 사례다. 기존 유통 방식과 상권 중심 구조에 맞서 ‘새벽배송’과 ‘프리미엄 콘텐츠 중심 소비’를 전면에 내세워 2030세대를 사로잡았다. 유통뿐 아니라 생활 패턴까지 바꿨다.

그들은 과거처럼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판을 새로 짜기’를 택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 전 영역에서 이들의 등장은 '혁명'이 아니라 '리셋'에 가깝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영향력을 갖고 싶어 하며, 자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직접 실행하고 싶어 한다.음악 산업에선 BTS를 만든 ‘빅히트뮤직’의 방시혁 의장이 1972년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 글로벌 팝 콘텐츠를 소비하고 기획하는 실무 리더는 90년대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콘텐츠 기획자, 유튜브 전략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대부분이 30대 초중반이다.
정치에서는 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 2022년 전국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30대 무소속 구의원 수는 총 92명으로, 2018년보다 2.3배 증가했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표). 정당 구조 바깥에서 ‘공천 없는 정치’로 유권자와 직접 연결된 흐름이 현실이 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다. 2024년 아트부산에서는 30대 기획자들이 주도한 NFT 및 AI 기반 미디어아트 전시가 전체 참여관 중 18%를 차지했다. 미술의 담론을 MZ세대가 전면적으로 이끄는 중이다.
카카오브레인, 업스테이지 등 AI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들은 대부분 1985년 이후 출생 세대다. 이들은 권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 해결력과 기술력으로 시장과 사회에 목소리를 낸다.
그들은 과거처럼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판을 새로 짜기’를 택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 전 영역에서 이들의 등장은 '혁명'이 아니라 '리셋'에 가깝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영향력을 갖고 싶어 하며, 자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직접 실행하고 싶어 한다.
역사의 전환기에서 퇴장하는 법을 아는 이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조율자’로 기억된다. 서울의 어느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기득권 세대는 이제 ‘판을 지키는 자’가 아닌, ‘공간을 열어주는 자’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권력 이양이 아니라, 세대 간 신뢰의 형성이라는 더 큰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다.기득권의 마지막 역할은 이제 무대를 멋지게 정리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역사의 승자
이런 흐름 속에서 현재의 기득권 세대에게는 중요한 기회가 주어졌다. 바로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역사의 전환기에서 퇴장하는 법을 아는 이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조율자’로 기억된다. 서울의 어느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기득권 세대는 이제 ‘판을 지키는 자’가 아닌, ‘공간을 열어주는 자’로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권력 이양이 아니라, 세대 간 신뢰의 형성이라는 더 큰 사회적 가치와 연결된다.
기득권의 마지막 역할은 이제 무대를 멋지게 정리하는 것이다. 무대 위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조명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일. 이는 단지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 지금이 아니면 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세대 교체가 곧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보이지 않던 방식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변화의 방향이다. 이 변화는 저항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미 현실로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세대가, 그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훌륭한 마무리를 해주길 바라는 일이다. 그들의 성공적인 퇴장이야말로, 다음 세대위한 최고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