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팀 [CEOin PREMIUM=기획팀 ]
루이다글러벌·디코드·스프링클라우드 등 대표 실패 사례 줄줄이
“투자금은 받았지만, 살아남지는 못했다.”
올해 문을 닫은 스타트업 중 초기 투자 유치 기업 비율이 무려 92%에 달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유망 기술, 정부 지원, 수십억 투자를 받았음에도 시장 진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스타트업들이 무더기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벤처업계 전반의 비용 대비 지속가능성 한계와 투자 효율성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29일 벤처 투자 플랫폼 더브이씨(THEV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7월 기준 폐업을 신고한 스타트업은 총 88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폐업 건수인 191건의 절반에 해당한다. 다만 연말에 폐업이 급증하는 경향을 고려하면, 올해도 작년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집계 대상은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단순한 아이디어 단계의 기업이 아니라, 시장성과 기술 가능성을 인정받고 외부 자금을 확보한 기업들조차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초기 투자 라운드(Seed) 이후 폐업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전체 88개 중 69%에 해당하는 61개 기업은 시드 라운드 투자 이후 3년 내 폐업했다.
즉, ‘가능성만 보고 돈을 태운’ 시장 구조에서, 기술 검증이나 사업모델 확보 없이 투자금 소진만 거듭된 사례가 속출한 셈이다. 이를 두고 스타트업 업계에선 “기술보다 자금 유치가 목적인 기업들이 많다”는 비판과 함께 투자 생태계의 구조적 개선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기술성을 인증받은 TIPS 선정 스타트업 23곳이 폐업했다는 점이다. TIPS는 민간 투자와 연계해 국가가 R&D 자금을 지원하는 대표적 기술창업 지원 시스템이다.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스프링클라우드’는 TIPS 선정 기업으로 약 100억 원의 국가 연구비를 수주했으나, 올해 폐업을 신고했다. AI 기반 에듀테크 기업 루이다글러벌도 누적 120억 원의 투자를 받고도 4월 문을 닫았다. 해외직구 플랫폼 ‘나우인파리’를 인수했던 디코드 역시 235억 원의 자금을 소화한 후 3월 폐업했다.
팁스 선정 기업의 폐업 비율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2년 16%(16건) → 2023년 17%(21건) → 2024년 20%(38건)으로 상승세다.
업종별 폐업은 바이오·의료·헬스케어 분야가 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게임과 교육(에듀테크)이 각 8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는 투자자들이 가장 많은 기대를 거는 ‘미래 산업’이 정작 시장에서 가장 먼저 퇴출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대표 사례인 MMORPG ‘매드월드’를 개발한 잔디소프트는 올해 2월 게임 서비스를 종료하고 폐업했다. AI 교과서 도입 무산 논란이 이어지는 에듀테크 업계도 투자를 받은 기업조차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이번 대규모 폐업 사태는 단순히 몇몇 기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스타트업 생태계 자체의 구조적 위기를 드러낸다. 초기 투자 유치와 정부 지원금 확보에만 집중한 기업, 투자금으로 인건비와 마케팅에만 의존한 구조, 그리고 ‘성장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매몰된 과잉 투자 경쟁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벤처캐피탈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검증 없이 투자에만 성공하면 스타트업으로 인정받는 분위기, 정부 지원과 TIPS 선정만으로 유망기업으로 포장되는 현실이 결국 생존 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투자 유치 → 생존 → 시장 장악'이라는 건강한 성장 곡선으로 리셋돼야 한다. 초기 자금의 낭비, 형식적인 기술 인증, 상징성에 치우친 지원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의 성패는 ‘기술력’보다 ‘실행력과 생존력’, 무엇보다 ‘시장과의 거리’에서 판가름 난다. 생태계 자체가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