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팀 [CEOin PREMIUM=기획팀 ]
“투자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한다.”
7월 29일 오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미국 워싱턴행 전용기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한미 상호관세 발효를 단 3일 앞둔 시점, 대한민국 최대 민간기업 총수가 미국의 심장부로 향했다. 이재용의 ‘정면 돌파 외교’는 단순한 출장 그 이상의 무게를 가진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의 막후 접촉을 통해 한미 관세 협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비공식 외교 채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의 ‘370억 달러 반도체 투자’라는 초대형 협상 카드를 들고, 트럼프 진영과의 연결고리를 활용한 특유의 정중한 외교력이 이번 담판의 키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재용 회장은 이미 미국 정계 고위 인사들과 오랜 기간 네트워크를 쌓아온 인물이다. 지난 2021년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텍사스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을 깜짝 발표한 것도 그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에는 앨런&코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팀 쿡(애플), 샘 올트먼(OpenAI) 등과 교류하며 글로벌 기술 동맹을 다졌고, 2023년에는 미국 상원의원단을 서울 승지원으로 초청해 교류를 이어갔다.
특히 이번 방문의 무대는 ‘워싱턴 D.C.’다. 이 회장은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인 존 튠 의원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공식 루트를 넘어서는 물밑 접촉이 기대된다. 트럼프 캠프가 주도하는 대중국·보호무역 강화 기조 속에서, 이 회장의 미국 행보는 한국 정부가 미처 닿지 못하는 외교적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는 평가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 외교의 실탄’, 바로 삼성의 대미 투자 카드다.
현재 건설 중인 삼성의 테일러시 파운드리 1공장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며, 총 투자액만 370억 달러(약 54조 원)에 달한다. 최근 테슬라와의 23조 원 규모 AI칩 공급 계약은 공장 조기 가동을 촉진시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업계에선 “1공장 가동 시점이 앞당겨지고, 2공장 착공도 기정사실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EU·일본이 관세 협상을 타결할 때 ‘투자확대’를 약속한 전례를 보면, 삼성의 추가 투자 발표는 협상력 제고의 핵심 카드다.
뿐만 아니라 이 회장의 워싱턴 방문에는 조선과 바이오 산업의 대미 협력 논의도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중공업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각각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와 미국 바이오 생산거점 확대와 맞물려 있으며, 이 회장이 이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미측에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MASGA는 우리 정부가 제안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로, HD현대·한화오션과 함께 삼성중공업이 핵심 주체로 거론된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슬로건과 맞닿아 있어 정치적 관심도도 높은 이슈다.
관세 문제는 단순히 가격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며, 글로벌 공급망을 자국 내에 고정시키려는 지정학적 압박의 산물이다. 이재용 회장이 나선 것은 단순한 기업 활동의 연장이 아니다.
그의 출장은 한국이 민간 외교 자산을 총동원해 국가 이익을 지키는 새로운 방식의 ‘CEO 외교’ 시대가 열렸음을 상징한다.
앞서 일본, EU 등은 미국과 관세 문제를 협상하며 자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교환조건으로 삼았다. 이재용 회장의 ‘워싱턴 담판’은 단순한 사업 확장의 문제가 아닌 한국 기업 전체의 글로벌 생존 전략의 시험대다.
국가가 공식 외교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이 회장이 가진 네트워크, 삼성의 투자력, 기술의 신뢰도로 해결할 수 있다면, 이번 방문은 단순한 출장 이상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한번 삼성의 어깨 위에서 전략적 시험대에 오른 지금, 이재용 회장의 행보는 그 자체로 새로운 외교의 형태이며, 글로벌 기업이 외교의 주체가 되는 시대의 전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