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팀 고려아연 최윤범, ‘미국 백기사’로 판 뒤집나… MBK·영풍 신주금지 가처분에 승부 갈린다
2조8500억 제3자 유증으로 지분 격차 1.71%p까지 축소… 법원 판단이 2026·2027 주총 향방 좌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중대 분기점에 섰다. 미국 제련소 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과 함께 추진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최윤범 회장 측에 ‘미국 백기사’를 불러들이는 수가 될지, 아니면 법원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인용으로 제동이 걸릴지에 따라 향후 2~3년의 지배구조가 좌우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제련소 건설을 위한 약 11조 원 규모의 투자 재원 조달을 위해 2조8500억 원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신주 인수자는 고려아연과 미국 전쟁부, 미국 내 전략적 투자자들이 함께 설립하는 합작법인 크루시블JV로, 증자가 완료되면 고려아연 지분 약 10.6%를 확보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크루시블JV가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 지분, 즉 ‘백기사’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계획대로 유상증자가 마무리될 경우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 간 지분율 격차는 기존 13%포인트대에서 1.71%포인트까지 급격히 좁혀진다. 이 경우 2026년과 2027년 정기 주주총회에서의 이사 선임 표대결 구도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집중투표제가 적용되는 고려아연 이사회 구조상, 소액주주 표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느냐에 따라 이사회 과반 확보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수는 법원 판단이다. MBK·영풍 연합은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사실상 경영권 방어를 위한 조치라며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해당 가처분 사건의 심문기일을 19일로 지정했다. 만약 법원이 신주발행 예정일인 26일 이전에 가처분을 인용한다면, 최 회장 측의 ‘우군 확보’ 전략은 일단 좌초되고 MBK·영풍 연합이 이사회 주도권을 확대할 여지가 커진다.
반대로 가처분이 기각되거나 신주발행이 예정대로 이뤄질 경우, 양측은 이사회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며 장기전 국면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지분 격차 축소 효과로 최 회장 측이 2026년 주총에서 최소 3석, 2027년 주총에서 5석 이상의 이사 확보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적용되는 ‘3%룰’까지 감안하면, 최 회장 측이 이사회 과반을 유지할 여지도 생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유상증자의 명분이 법정 공방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제련소 투자는 회사 이익뿐 아니라 한미 동맹과 경제안보 차원에서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는 주장을 반박할 강력한 논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우려도 공존한다. 대규모 미국 투자로 고려아연의 재무 부담이 확대되면서,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의 시선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유상증자로 일부를 충당하더라도 잔여 투자금은 차입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 연결 기준 차입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향후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의 의결권 행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관건은 법원의 판단과 이후 주주 표심이다. ‘미국 백기사’를 앞세운 최윤범 회장의 반격이 성공할지, 아니면 MBK·영풍 연합이 가처분으로 흐름을 다시 되돌릴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방은 이제 법정과 주주총회라는 두 무대에서 동시에 결정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