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 라스베이거스가 GPU를 이야기할 때, 실리콘밸리는 이제 메모리를 이야기한다.
AI 패권 경쟁의 병목은 연산이 아니라 ‘데이터 이동’이고, 그 심장은 HBM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 서부를 돌며 글로벌 빅테크 CEO 5명과 연쇄 회동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미팅이 아니다. AI 인프라 전쟁의 핵심 파트너 자리를 굳히기 위한 전략적 행보다.

10일(현지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최 회장은 마크 저커버그와 만나 장기 메모리 공급 및 차세대 AI 인프라 협력을 논의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메타 데이터센터에 서버용 D램과 기업용 SSD를 공급해 온 핵심 파트너다. 이번 회동의 핵심은 메타의 AI 가속기 프로젝트 MTIA에 맞춘 HBM 최적화다.
양측은 HBM4, HBM4E 이후 세대까지 기술 방향성을 조기 확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단순 공급 계약을 넘어 ‘설계 단계부터 공동 최적화’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의 진화다. AI 가속기 설계와 메모리 아키텍처를 동시에 맞추는 구조는 향후 성능·전력 효율 경쟁에서 결정적 우위를 만든다.


11일에는 순다르 피차이를 만나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메모리 수급 안정화를 논의했다.
구글은 생성형 AI 모델 확장에 따라 데이터센터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문제는 메모리다. TPU·GPU 등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인 HBM은 단기간 증설이 어렵다.
SK하이닉스는 구글 차세대 TPU 아키텍처에 맞춘 커스텀 HBM 공동 설계를 제안했다. 특히 HBM4 기반 TPU 협력까지 포함한 중장기 로드맵 논의는 단순한 ‘벤더’가 아닌 ‘공동 설계자’로의 위상 전환을 의미한다.


최 회장은 혹 탄과 차세대 AI 칩 아키텍처와 메모리 통합 전략을 논의했다. 브로드컴은 글로벌 빅테크에 맞춤형 AI 가속기와 네트워킹 솔루션을 공급한다. 메모리와 칩 설계의 동시 최적화는 AI 시스템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5일에는 젠슨 황과 만나 AI 산업 전반을 논의했고, 10일에는 시애틀에서 사티아 나델라와 HBM 협력 및 데이터센터·솔루션 사업 확대를 협의했다.
AI 반도체 시장은 2026년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HBM은 AI 서버 한 대당 수요가 기존 대비 5~6배 증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확보한 상황에서, 이번 연쇄 회동은 ‘물량 확보’ 이상의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이번 일정은 단순한 고객 미팅이 아니다. 최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SK하이닉스 미주 사업과 AI 생태계를 직접 점검했다.
HBM은 AI 가속기의 심장이다. GPU가 엔진이라면, HBM은 연료 공급 시스템이다. AI 모델이 거대해질수록 메모리 대역폭과 전력 효율은 더 중요해진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3E 양산 체제에 들어섰고, 차세대 HBM4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회동을 통해 빅테크의 로드맵과 보폭을 맞춘다면, 단순 공급사가 아닌 ‘전략적 공동 설계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