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편집장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가 기록한 한국 현대사 60년…
임향자 원장 마련한 특별상영회에서 사진과 역사의 의미 재조명
김승곤·진동선·이상엽 등 사진계 전문가 참여…고희영 감독 “우리가 잊고 있었고, 잊고 싶었던 대한민국의 얼굴이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한 일본인 사진가가 60여 년에 걸쳐 기록한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이 스크린 위에서 다시 살아났다.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진의 얼굴』은 일본의 보도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의 삶과 작품을 통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얼굴과 그 시대의 기억을 되짚는 작품이다.
임향자 원장이 마련한 특별시사회에서는 영화 상영에 이어 감독과 사진계 전문가, 관객들이 함께하는 대화가 진행됐다. 사진평론가 김승곤이 진행을 맡고 사진평론가 진동선,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이 참여해 작품의 제작 배경과 사진사적 의미, 기록의 가치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특히 관객들이 영화 속 사진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을 직접 소개하면서 사진 한 장이 역사적 자료이자 개인의 삶을 증언하는 기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한국사진예술원 임향자 원장이 마련한 특별시사회에서는 영화 상영에 이어 감독과 사진계 전문가, 관객들이 함께하는 대화가 진행됐다. 사진평론가 김승곤이 진행을 맡고 사진평론가 진동선,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이 참여해 작품의 제작 배경과 사진사적 의미, 기록의 가치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영화의 주인공인 구와바라 시세이는 1960년대부터 한국 사회의 변화와 사람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온 일본인 사진가다. 청계천 일대의 서민 생활과 도시의 변화, 거리의 시위와 사회적 갈등, 동두천 기지촌 등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현장이 그의 사진에 남아 있다.그의 작업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향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정치·사회적 변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표정과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사회의 과거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 자료가 됐다.
『사진의 얼굴』은 이처럼 방대한 사진 기록을 바탕으로 구와바라가 무엇을 바라보고 왜 기록했는지를 추적한다. 사진가로서의 신념과 작업 과정은 물론, 장기간 취재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감당해야 했던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의 삶도 함께 다룬다. 한 사람의 예술적 성취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록을 위해 살아온 개인의 삶과 그 기록이 후대에 남기는 의미를 살펴보는 구성이다.
고희영 감독은 시사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 제작의 출발점이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이었다고 밝혔다.
『사진의 얼굴』은 사진가의 일대기를 넘어 한국 현대사를 다시 읽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과 거리의 풍경, 시대의 사건들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면을 제공한다.고 감독은 전작 『불숨』을 촬영하던 중 한 도예가의 작업실에 걸린 흑백사진을 발견했고, 그 작품이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작품을 찾아보면서 사진가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직접 만나기 위해 일본 도쿄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의 첫 방문이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작은 아파트에 천장까지 쌓인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이 전부인, 사진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 여기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감독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유명 사진가의 명성보다 생활공간을 가득 채운 사진들이었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사진 속에 한 사람의 시간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이 영화 제작의 동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영화의 제목인 『사진의 얼굴』에도 이러한 제작 의도가 반영됐다. 고 감독은 영화 제작을 시작하면서 구와바라와 공감했던 원칙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인물의 생애를 중심에 놓기보다 사진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고 감독은 구와바라가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사진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줘”라고 요청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사진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하겠다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이어 “선생님이 촬영하신 사진이 100만 컷인데, 그중 한국 사진이 10만 장이 된다”며 “그 사진들을 보다 보니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가 잊고 싶었던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이 그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방대한 사진 가운데 한국에서 촬영된 기록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
고 감독은 “이 10만 컷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이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봐야 될 사진이구나, 우리가 공백이었던 부분들을 선생님의 사진들이 다 메워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그는 사진전과 영화가 기록을 전달하는 방식의 차이에도 주목했다. 사진전은 일정한 기간과 장소에서 관람해야 하지만 영화는 상영과 재상영을 통해 더 오랫동안 관객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전은 그 기간만 보면 끝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화가 있다면 언제든지 사진을 보고 싶을 때 다시 꺼내서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원본의 기록성을 훼손하지 않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고 감독은 사진 편집 기술을 활용하면 여러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원본의 의미를 바꾸는 방식은 피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진의 본질을 절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며 화면을 천천히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정도의 편집을 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상황에서 연속 촬영된 사진을 일부 함께 배치했지만, 촬영 당시의 장면과 사진가의 시선을 최대한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제작 방식은 영화가 사진을 단순한 영상 소재로 소비하기보다 독립적인 역사 기록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지된 이미지에 움직임을 부여하면서도 기록의 원형과 의미를 존중하려는 감독의 태도가 작품 전반에 반영됐다.
김승곤 사진평론가는 구와바라와의 오랜 인연을 소개하며 다큐멘터리 사진이 갖는 기록성과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1980년대 구와바라를 처음 만났으며, 이후 구와바라의 저서 『보도사진가』 한국어 번역과 국내 사진전 개최 등에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이번 영화를 여러 차례 관람했다면서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60여 년 동안 사진 작업에 헌신해 온 구와바라의 삶이 영화에 진솔하게 담겨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중요한 가치로 진실과 기억을 꼽았다. 사진이 특정 순간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당시의 사회와 사람들을 이해하는 역사적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진과 영화가 표현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현실을 시각적으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진동선 사진평론가는 영화에서 사진에 대한 사랑, 기록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읽어냈다고 밝혔다.
진 평론가는 사진이 지닌 본질적 가치가 기록성에 있다며 사진가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 이를 이미지로 남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와바라의 사진이 의미를 갖는 이유도 단순히 오래된 사진이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 시대와 장소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시각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구와바라가 불안정한 경제적 여건과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오랜 기간 사진 작업을 이어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사진가가 수십 년 동안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희생과 책임이 영화에 담겨 있다는 평가다.진 평론가는 사진가의 작품이 후대에 역사적 유산으로 남기 위해서는 대표작을 비롯해 작품을 기억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사진을 보존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구와바라의 초기 작업과 일본 사진계에서의 평가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공해 사건인 미나마타병을 기록한 사진집을 소개하며 구와바라가 사회적 문제와 인간의 고통을 오랫동안 기록해 온 사진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구와바라는 미나마타병을 기록한 초기 작업으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한국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사진 활동을 이어왔다. 2014년에는 일본의 권위 있는 사진상인 도몬켄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2026년 9월 2일 개봉한 98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12세 이상 관람가다. 영화사 숨비가 제작하고 트리플픽쳐스와 스튜디오 초이스가 배급했다. 2025년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개봉에 맞춰 구와바라의 사진전도 마련되는 등 사진과 영화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에 등장한 사진과 실제 가족의 기억이 연결되는 장면도 있었다.
한 관객은 영화 초반에 등장한 시위 사진 속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과거 해당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닮은 인물을 알아봤지만 촬영 장소와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서로 달라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관객은 이번 영화를 통해 사진의 배경을 이해하게 됐다며 반가움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참석자들은 해당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과 당시 시위 상황에 관한 기억을 공유했다.
고희영 감독은 관객의 사연에 반가움을 표하며 사진 속 인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일한 장면을 촬영한 여러 사진 가운데 어떤 사진이 대표작으로 선택되는지에 관한 질문에도 답했다.고 감독은 처음에는 대표 사진의 앞뒤에 촬영된 필름을 활용하면 당시 상황을 보다 역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필름을 확인하고 인화하는 과정에서 사진마다 구도와 방향이 다르고 원본이 지닌 느낌도 달라 단순히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는 의도한 효과를 얻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부 장면에서만 연속 촬영된 사진을 함께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적 표현과 사진의 원형을 유지하는 문제 사이에서 감독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관객은 영화에 등장한 동두천 기지촌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가족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가족의 이별과 당시 사회적 환경에 대한 기억이 구와바라의 사진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이러한 발언은 사진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동시에 개인과 가족의 삶을 기억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같은 사진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역사적 자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냈던 가족의 얼굴이나 삶의 흔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구와바라의 아내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김승곤 평론가는 구와바라가 오랫동안 한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오가며 취재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가족 역시 어려운 시간을 감당해야 했다고 언급했다.
고희영 감독은 영화 개봉 당시 구와바라 부부가 함께 참석했던 관객과의 대화를 회상하며 상영 전에는 구와바라에게 관심이 집중됐지만 상영 후에는 그의 아내에게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사진가의 성취 이면에 존재하는 가족의 역할과 희생이 관객들에게 전달됐다는 설명이다.
이날 시사회가 갖는 의미는 영화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의 기록성과 역사적 가치, 기록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함께 살펴봤다는 데 있다.
고희영 감독은(사진) 구와바라가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사진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줘”라고 요청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사진을 중심으로 영화를 구성하겠다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사진 한승훈 작가 / 행복디자이너 김재은 블로그 캡쳐
특히 임향자 원장이 마련한 이번 특별상영회는 감독의 제작 의도와 사진계 전문가들의 해설, 관객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고희영 감독은 행사 준비에 힘쓴 임 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으며, 참석자들은 작품에 관한 질문과 의견을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번 영화가 다루는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은 오늘날 경제·사회 발전의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청계천 서민들의 삶과 도시의 변화, 베트남 파병과 민주화운동, 동두천 기지촌의 현실은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겪었던 변화와 그 이면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구와바라 역시 2026년 8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을 한국인들의 피와 땀, 눈물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는 경제성장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의 삶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는 그의 사진 작업과 연결된다.
고희영 감독은 앞서 영화 개봉 당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젊은 세대가 역사적 사실을 일방적으로 전달받기보다 예술을 통해 먼저 접하고 스스로 관심을 넓혀가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그런 점에서 『사진의 얼굴』은 사진가의 일대기를 넘어 한국 현대사를 다시 읽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과 거리의 풍경, 시대의 사건들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면을 제공한다.
이번 특별시사회에서 이어진 대화 역시 사진의 역사적 의미가 전문가들의 평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사진 속에서 아버지를 발견한 관객, 가족의 과거를 떠올린 참석자, 기록의 윤리와 보존 문제를 논의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진이라는 하나의 매체에서 출발했다.
사진 한 장은 촬영되는 순간에는 현재의 기록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과거를 증언하는 자료가 된다. 그리고 그 사진을 다시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기억과 해석이 더해진다.
고희영 감독의 『사진의 얼굴』과 이번 특별시사회는 구와바라 시세이가 남긴 60여 년의 기록을 통해 사진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넘어 한 사회의 역사로 남는지를 되묻는 자리였다.